미운 우리새끼, 팀킬에 대해서!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밍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상대는 무능한 아군이라는 말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폭격 도중에 미군 전투기가 떨어뜨린 폭탄이 바로 밑에서 편대 비행하던 아군 비행기에 맞아 그 자리에서 공중 폭발해버린 어이없는 기록도 있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팀킬이라고 부른다.
실제 상황에서 저런 공격 한 번 당하면 인생이 끝나버리겠지만, 게임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만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서서히 쌓여가서 결국 실전격투의 찬란한 세계로 입문하게 될 뿐. 그래서 팀킬은 무섭다. 10년, 20년 동안 쌓인 친구관계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널 후려칠거야
그러한 팀킬에 대해 우리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팀킬의 역사는 깊고 종류는 많은데 통틀어서 그냥 팀킬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팀킬이 항상 옆에 있어주니 가볍게 생각했던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팀킬의 역사와 종류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팀킬의 성립과 발전
기본적으로 팀킬은 2인 이상의 협동 플레이에서 가능하다. 1984년 닌텐도에서 개발한 ‘벌룬파이트’는 팀킬이라는 개념을 수립한 역사적인 게임이다.
▲팀킬의 할아버지 격 게임
‘벌룬파이트’는 단순하다. 자신의 풍선을 지키면서 적의 풍선을 터트리는 것이 목표인데 풍선은 기본적으로 발이나 몸으로 건드리면 터진다. 여기까진 그냥 평범한 게임이지만 문제는 2인 동시 플레이시 발생한다. 조작이 꽤 어렵고 가속도가 붙으면 조종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에 상대방의 풍선을 밟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기존의 게임이라면 플레이어끼리 접촉이 없거나 (슥 통과되는 식), 혹은 단순히 튕겨 나가는 식으로 만들었어야 정상인데, ‘벌룬파이트’는 플레이어간의 충돌 시에도 동일하게 풍선이 터지도록 만들었다. 세이브/로드 기능도 없는 게임이라 친구가 풍선 하나를 터뜨릴 때 마다 실제 수명이 갉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때문에 실수 몇 번 반복하면 친구나 형제지간의 우정은 쉽게 붕괴되었다. 실제로 이 게임으로 친구를 잃은 기억이 있는 필자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다. (난 주로 터뜨리는 쪽이었지만)
▲괜히 한번 건드려 봤다가
▲이렇게 복수당하기 십상, 반복되면 그대로 리얼격투에 돌입한다
팀킬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이 성립되고, 그 오묘한 매력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수많은 팀킬 시스템을 장착한 게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로운 장르인 대전격투가 태어난다. 이 때까지만 해도 팀킬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플레이어간에 서로 공격할 수 있는 기능’ 정도에 그쳤다. 게임은 사람 vs 컴퓨터라는 관념이 박혀 있었기에 굳히 ‘팀킬’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어간의 전투’라는 부분을 특화시킨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는 팀킬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장르의 진화를 보여준 게임이다. 이번에는 같은 팀 내의 동료끼리에 벌어지는 ‘팀킬’에 대해 다룰 것이기에, 대전액션 장르는 제외시키도록 하겠다.
▲대전격투는 팀킬 시스템의 성립 과정에서 뻗어나온 장르이다
팀킬의 분류, 고의적으로 마련해놓은 팀킬 시스템
대전액션을 분가시킨 팀킬 시스템은 게임마다 독자적으로 적용되며 진화해간다. 그 결과 현재는다양한 팀킬 시스템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두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크게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분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게임 내에서 팀킬을 하라는 의도로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는가, 다른 기능이 팀킬에 악용되는가
2. 같은 팀을 직접적으로 죽이는가, 간접적으로 죽이는가
이 기준을 바탕으로 수 많은 팀킬 게임들 중 널리 알려지고 대표적인 게임 위주의 예를 들어보자. 먼저 1번 문항의 게임 내에서 고의적으로 팀킬을 하라는 의도로 시스템을 마련해 놓은 게임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게임 제작자의 “서로 직접적으로 죽이고 노세요” 라는 친절한 의도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살펴보겠다.
▲싸움 구경은 참 재미있어
이 분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포트리스’ 시리즈를 들 수 있다. ‘포트리스’ 시리즈의 팀전은 두 편으로 나뉘어 적의 탱크를 공격하여 전멸시키면 이기는 게임이다. 독특한 점이라면, 같은 편까지(심지어 본인 자신도) 공격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게임 초보의 경우 같은 편을 공격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고 (같은 편 캐논이 빨콩 더블로 나를 공격하는 기분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고의적으로 비매너 팀킬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땅의 두께가 얇은 ‘밸리’맵 등에서는 한 두번의 실수로 아군을 낙사 시킬수도 있다. 실수로 같은 편을 공격하게 되면 팀의 패배에 한 몫 하게 되는 셈이므로, 팀킬 시스템이 없을 때 보다 훨씬 필사적인 컨트롤을 하게끔 만든다. 이런 경우, 팀킬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최선을 다한 컨트롤을 하게끔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초보의 경우 실수로 저런 상황을 자주 연출하기도 한다
▲심지어 슈퍼탱크의 유도탄을 아군에게 쏘는 경우도.. 스샷은 다행히 조준 잘 한 경우
게임 내에서 팀킬 관련 시스템을 마련해 놓더라도, 스포츠 게임처럼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는 게임에서는 직접적으로 같은 편을 죽이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팀의 게임진행을 방해하거나 팀을 지게 만드는 행위를 하는 것도 엄연한 ‘팀킬’에 들어간다. 간접적인 팀킬을 허용한 대표적 게임으로는 ‘카트라이더’가 있다. 게임 아이템인 물폭탄, 자석, 바나나, 지뢰, 미사일 등의 아이템은 피아 구분없이 공격하는 아이템이다. 개인전이라면 모를까, 팀전에서 이런 아이템을 생각없이 뿌리고 다니는 것은 영락없는 팀킬이다. 한창 1,2위를 다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물폭탄, 알고 보니 뒤에 오는 우리 편이 던졌다면? 욕설 차단 시스템이 원망스러워진다.
▲미사일과 물풍선은 정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어 미안, 근데 고의였어
팀킬의 분류, 다른 기능이 팀킬로 작용하는 시스템
게임 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팀킬 시스템을 마련해놓지는 않았으나, 다른 시스템을 이용하여 아군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 정도가 심해 ‘팀킬’로 분류되는 게임을 살펴보자.
먼저, 타 시스템을 이용해 아군을 직접적으로 죽일 수 있는 게임으로는 고전 게임인 ‘아이스클라이머’를 빼 놓을 수 없다. ‘아이스클라이머’는 얼음을 깨며 위로 올라가는 방식의 게임이다. 2인 협동 플레이를 통해 보다 쉬운 플레이가 가능하며, 서로 직접 공격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정된 화면 탓에 한 명이 화면 위로 먼저 올라가면 화면이 위쪽 플레이어를 따라간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래 쪽의 땅은 화면 아래로 사라지게 되고, 그 곳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는 결국 죽어버린다. 같은 편 끼리 공격은 되지 않지만 먼저 올라가는 행위로 아군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추억의 메인화면
▲동료 놔두고 혼자 올라가면~
▲널 저주할거야
게임에 있어 이 시스템은 상당한 호재로 작용했다. 이전까지는 협력 플레이 속의 경쟁은 단순히 스코어 정도로만 표시되었지만, ‘아이스클라이머’에서는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나락으로 빠뜨림으로써 눈에 보이는 쾌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 시스템을 이용해 아군을 공격하는 시스템 중 간접적인 팀킬로 작용하는 게임으로는 ‘서든 어택’을 들 수 있다. ‘서든 어택’은 많은 FPS에서 그러하듯 기본적으로 팀킬이 불가능하다. 범위형 폭발 무기인 수류탄도 자신과 적군에게만 효과가 있을 뿐, 아군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섬광탄은 범위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골고루 시야를 멀게하는 효과를 준다. 때문에 우리편이 섬광탄에 직격당하여 시야를 몇 초간 잃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0.1초의 간격으로도 승패가 엇갈리는 FPS에서 이러한 상황은 치명적이다. 특히 적이 아닌 아군쪽에서 날아온 공격에 당한다면 정신적 충격은 배가 된다. 필자는 섬광탄을 맞고 허둥지둥 대피한 후 대화창에 욕을 하다가 죽은 적도 있다. 심지어 몇몇 유저는 이를 악용하여, 섬광탄에 당해 구석으로 피신한 유저 앞을 가로막아 게임을 방해하는 비매너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 놈이 단어 사이사이에 `1`을 넣게 만드는 주범이다
역시 인간은 재밌어
지금까지 팀킬의 시작, 그리고 다양한 발전 모습을 살펴보았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팀킬은 게임의 심리적 긴장감을 더하기도 하고,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든다. 팀킬 시스템을 역이용하면 전략적 요소로도 활용할 수 있고, 우리편을 죽이지 않기 위해 게임을 한 차원 깊게 파고들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팀킬 시스템이 없는 게임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적에게는 통용되는 공격이 아군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은 현실 세계라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팀킬 시스템이 악용되면, 본격 실전격투와 함께 매스컴에 보도되는 가문의 영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실제로 게임을 하다 다투어 상대방을 찾아가 실전격투를 벌이는 ‘현피’ 행위에 대한 뉴스가 매년 보도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에는 비매너 행위나 PK도 있지만, 팀킬 시스템의 남용으로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팀킬 시스템을 섣불리 적용하거나 방지하지 못해서 유저들이 떠나가도록 만든 게임도 있다.
팀킬의 본질은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공개하는 데 있다. 평소에 남에게 화 한번 제대로 못 내는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악마가 되는 경우도 있듯이, 팀킬 시스템은 승패 여부에 관계없이 인간의 속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밖에서는 포용력있는 리더가 게임에서는 아군을 죽이면서 낄낄대고 있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말자. 그는 단지 팀킬이라는 중간매체를 통해 가면을 벗은 것 뿐이다.
Ps - 늑대 킹왕쫭!